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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골
관리자(tour)    등록일     조회 672      다운(3건/1개)

◈부처골◈

[가는 길]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 포항방면으로 조금 가다보면, 울산, 불국사 방면으로 우회전하는 사거리 교차로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 조금 가다 보면,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오른쪽으로 화랑교육원 방면으로 가는 포장된 소로가 나온다.

가로수가 좋은 이 길을 따라 대략 2-300여 미터 정도 가다보면 작은 다리가 나온는데, 여기에서 오른 쪽으로 10여 미터 정도 들어가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약 500여 미터 가면, 너른 터가 나오고 그 옆으로 2-3채의 농가가 있다.

이 곳이 바로 부처골 들어가는 입구다. 이 처럼 특별히 부처골 입구를 알려주는 표시판은 없다. 차를 세우거나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앉아 쉴 수 있는 너른터가 있는 곳이 부처골의 입구를 알려줄 뿐이다.

[제1절터]

부처골을 형성하고 있는 서쪽 산맥 끝머리에 노송들이 우거진 숲이 있다.
이 숲이 첫째 절터다. 지금은 여기저기 무덤이 있고 돌축대도 많이 파괴되어 얼른 보아서는 건축터라고 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 곳에서 발견된 갖가지 기와 조각들과 실내 바닥에 깔았던 전(塼) 토막들로 미루어 보아 전각터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터는 반달형으로 솟은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조용히 흐르는 남천을 앞에 끼고 있다. 남천 건너 아담한 이리산(狼山)이 마주 보이니 규모는 작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터다.

[제2절터]

제1절터에서 남쪽으로 약 150미터쯤 산비탈을 돌아 오면 바위들이 듬성듬성 솟아 있는 작은 바위산이 나타난다. 이 바위를 배경으로 또 하나의 건축터가 나타난다.
이곳이 둘째 절터다. 지금 이 터에는 길이 40미터, 높이 3미터 되는 돌축대가 있을 뿐 주춧돌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이 건축터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역시 밭고랑에 뒹구는 기와 조각뿐이다.

남천을 앞에 둔 환경은 먼저 터와 같으나 바위산을 배경으로 하고 큰 축대 위에 세운 건물이었기 때문에 분위기는 앞의 터와 다르다. 깊은 계곡의 큰 절터에 비교하면 이 두 절터는 작은 암자에 불과하나 자연 환경을 묘하게 이용해 세운 품위 있는 전각터들이다.

[제3절터]

둘째 터에서 100미터쯤 남쪽으로 가면 부처골 입구에 이른다. 이 골짜기의 어귀는 무슨 유적이 있을 것 같지도 않게 여겨질 만큼 좁다. 흘러오는 개울물을 거슬러 250미터쯤 들어가면 골짜기는 갑자기 넓어지면서 시야가 훤히 트인다.

이 평지를 '학갓들'이라 부르는데 지금은 모두 논밭으로 되어 있다. 학갓들 어귀가 제3절터인데 이곳의 유명한 유물은 감실여래좌상이다.

감실 여래좌상


제일 첫 논둑에서 북쪽 산등성어리로 약 15미터쯤 올라가면 산허리에 우뚝우뚝 솟아 있는 많은 바위 중에 제일 큰 바위가 감실불상이 있는 큰 바위다.
바위 높이는 3.2미터가 되고 밑너비가 4.5미터 되는데, 산벼래에 솟아나와서 남쪽을 향해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 바위 앞면에 홍예형(虹霓形)으로 감실(龕室)을 파고 그 안에 부처를 새겼으므로 부처는 돌로된 집속에 앉아 계신 듯 보인다.

다소곳이 숙인 둥근 얼굴, 작은 육계가 솟아 있는 큰 머리 알맞게 생긴 코, 초생달 같은 눈썹, 그 아래로 조용히 부풀어 오른 눈시울에 그늘이 지우면서 명상에 잠긴 두 눈이 그려진다.
소담하게 두 뺨을 형성하며 흘러내린 부드러운 곡면은 두툼한 입술 양가에 패어진 홈에 어리어 한없는 웃음으로 피어나온다. 팔장을 끼고 앉은 몸체는 4각으로 솟았는데 넓게 놓인 두 무릎은 한없이 평안하다. 대좌와 양쪽 무릎과 팔소매가 3단으로 3각 구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 불상의 안정감은 감실속의 고요한 신비감을 한층 감돌게 한다.


만일 이렇게 낮은 감실 속에 불국사의 비로자나 여래처럼 활동적인 불상을 배치하였더라면 어떠하였을까? 낮은 천장에 머리가 부딪힐까봐 불안하고 답답하게 보였을 것이다. 감실 속에 절대로 일어설 것 같지 않은 정적인 불상을 배치하였음은 신라 예술가들의 슬기로운 재치였다고 생각된다. 이 불상의 조각 수법에는 묘한 모험이 있다.

얼굴은 둥글고 부드러운 곡면으로 처리되었는데 비해 옷깃 사이로 드러난 앞 가슴은 정사각형으로 나타나 있고, 조각 수법도 직각으로 처리되었다. 둥글고 부드러운 얼굴을 지닌 몸체가 정사각으로 표현되고 딱딱한 직각으로 조각되었다는 것은 지금의 조형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넓은 시야로 이 감실 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것때문에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양쪽 무릎의 곡선과 발바닥을 그린 곡선이 얼굴의 부드러움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두 어깨에서 흘러내린 가는 옷주름들이 팔소매에서 폭포처럼 흘러 넘어 양 무릎 위로 감돌아 대좌에 흘러내려 출렁거리는 선의 율동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드러운 옷주름들의 흐름이 강직한 몸체를 감싸고 돌면서 성격이 다른 얼굴과 몸체를 하나로 융화시켜 놓았다.

출렁이는 대좌는 바다요, 덩실하게 가로놓인 두 무릎은 언덕이요, 사각으로 우뚝 솟은 몸체는 큰 바위산이다. 그 위에 둥근 얼굴은 새로 떠오른 달님이라 할 수 있으니, 그 밝은 웃음은 출렁이는 바다를 찬란하게 비치는 듯한 환상을 일으킨다. 대자연을 법계라 하고 법계의 만상을 부처라 한다는데 상식을 초월한 과감한 수법으로 법계의 모습을 부처에게 나타내니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닐까?

이 불상이 만들어진 연대는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라 한다. 팔짱을 끼고 있는 손가짐과 대좌를 덮고 있는 옷자락이 그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부처골
보물 제198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자연암반에 감실을 파고 마련한 이 여래좌상은 단정한 자세에 상현좌를 이루고 하의는 얕게 새겼다. 양어깨에 걸쳐 입은 법의는 아래로 흘러내려 옷자락이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남아 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 시대 말기의 제작으로 판단되는데 이 불상으로 해서 이 계곡의 이름을 부처골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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