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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사
관리자(tour)    등록일     조회 877      다운(3건/1개)

◈기림사 ◈

석가모니가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던 승원 중에서 첫손에 꼽히는 것이 죽림정사와 기원정사이다.

특히 기원정사는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20년이 넘게 머무른 곳이다.

이와 더불어 불자들의 수행도 점차 유랑위주에서 정착으로 바뀌었고 정사도 점차 수를 늘리게 된다. 그 기원정사의 숲을 '기림'(祇林)이라 하니 경주 함월산의 기림사는 그런 연유에서 붙은 이름이다.


기림사는 광복 전만 하더라도 이 일대에서는 가장 큰절로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였으나 교통이 불편한데다 불국사가 대대적으로 개발됨에 따라 사세가 역전되어 지금은 거꾸로 불국사의 말사로 있다.
신라에 불교가 전해진 직후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오백명의 제자를 교화한 임정사였다는 설화도 있고 그 뒤 선덕여왕20년(643)에 원효대사가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개명하였다는 설도 있지만 분명치가 않다.

「삼국유사」에 "신라31대 신문왕이 동해에서 용으로 화한 선왕으로부터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얻어 가지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림사 서편 시냇가에서 잠시 쉬어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통일 신라 초기인 신문왕 이전부터 있던 고찰로 생각된다.

고려 말기에 각유 스님이 이 절의 주지로 있었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철종14년 (1863)에 대 화재로 주요 건물이 불탔으나 경주 부윤 송우화가 크게 시주하여 다시 지었다.
가람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약사전, 맞은편에 진남루, 서쪽으로 응진전, 동쪽으로는 수령 500년이 넘는다는 큰 보리수나무와 목탑자리가 남아 있는 구역이다.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보물 제833호로 지정된 조선 시대 목오 건물이며, 그 앞에 통일신라 말기에 만들어진 탑신의 체감률이 고른 단정한 삼층석탑( 유형문화재 제205호로 지정)과 근래 새로 만든 석등이 있다.
둘째는 최근 불사한 명부전, 삼성각 관음전, 산신각과 기타 요사채 등이 있는 곳이고 셋째가 박물관이다.

삼신각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매월당 김시습의 사당도 볼 수 있다. 김시습이 기림사에 머문 인연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세운 사당이다.

기림사에는 다섯 가지의 맛을 내는 물이 유명하다. 대적광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 옆의 장군수는 기개가 커지고 신체가 웅장해져 장군을 낸다는 물이고, 천왕문 안쪽의 오탁수는 물맛이 하도 좋아 까마귀도 쪼았다는 물이다.

천왕문 밖 절 초입의 명안수는 기골이 장대해지고 눈이 맑아지며, 후원의 화정수는 마실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북암의 감로수는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과 같다는 물이다. 장군의 출현을 두려워한 일본인들이 막아버린 장군수만 물이 끊겼을 뿐 다른 네 곳은 지금도 각기 다른 물맛을 내며 물을 뿜고 있다.

최근 개관한 박물관에는 기림사를 대표할만한 건칠보살좌상과 1986년 9월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에서 발견된 문적(文籍)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들 역시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 제959호) . 전적들은 모두54종 71책으로 정교한 판각 솜씨를 보이고 있다.

그 밖에도 지옥과 염라대왕을 묘사한 탱화, 부처님의 진신사리, 와당 각종서책 등이 즐비하다. 이렇듯 많은 유물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기림사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 아닌가싶다. 기림사가 있는 함월산은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로 전쟁이나 기타 재화(災禍)를 면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기림사 주위로는 계곡 물이 흐르고 있는데, 이 계곡을 따라 500m쯤 거슬러 오르면 두 암벽의 벌어진 틈새로 시원한 물줄기가 내려치는 용두연이 나선다. 이 폭포 부근이 야영이나 취사하기 알맞은 장소이며. 용두연과 기림사 중간쯤에 있는 선녀 탕에서는 물놀이를 즐길 만하다.

용두연이라는 이름은 신문왕이 이곳에서 쉬다가 동해의 용에게 받은 옥대고리 하나를 냇물에 담그니 그것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기림사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된 절로 조선 시대 31본산의 하나이다. 처음에는 임정사라 불렀으나 원효대사가 확장하고 기림사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조선 정조 때 경주 부윤 김광묵이 사재를 들여 중수하였고 철종 14년(1863)에 다시 중수하였으며 그후 고종 15년(1878) 법당과 여러 건물을 중건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목탑지, 삼층석탑과 건칠보살좌상(보물 제415호) 등이 있으며, 대적광전 등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기림사 건칠보살좌상
보물 제415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우리 나라에는 건칠불이 매우 희소하게 남아 있는데 이 보살불은 조각 수법이 훌륭하고 조성 연대도 명확한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타래머리를 한 위에 보관을 따라 만들어 얹었고,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둥글고 풍만한 얼굴과 그 자세로 보아 관세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복부의 큼직한 띠매듭과 가슴에 걸려 있는 3가닥의 영락띠는 조선 시대 목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불상의 조성 연대는 하대 상면에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해 조선 연산군 7년(1501)으로 판명되었다. 기림사 대적광전 보물 제833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이 건물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신라 선덕여왕 (632-647)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그후 6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양식상으로 5차 중수 때인 조선 인조 7년 (1629)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외관은 본전 건물다운 웅건 함을 갖추었고 내부는 넓고 화려하여 장엄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장대석의 낮은 기단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전면은 모두 화려한 꽃살분합문을 달았다. 공포는 외3출목, 내5출목으로 살미 첨자 끝의 양서에 연봉이 초각되고, 첨차하부가 교두형을 이룬 전형적인 17세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내부는 4개의 고주 외에 따로 2개의 전면 고주를 세워 넓은 공간을 견실히 구축하였으며, 빗천장과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견실한 구조와 장엄한 공간 구성이 돋보이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불전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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