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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률사
관리자(tour)    등록일     조회 699      다운(6건/1개)

◈백률사◈

굴불사터 사면석불 위쪽에 상당히 길게 뻗어 올라간 돌계단이 있다.
백률사로 오르는 계단이다.
현재 건물은 대웅전과 요사채밖에 없어 조용한 절이지만 이차돈의 순교와 신라의 화랑 부례랑을 구출한 대비천에 얽힌 이야기 등 이적이 많은 곳이다.

절의 창건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효소왕 2년(693)에 백률사와 대비천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 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차돈의 목을 베자 흰 피가 솟았고 그의 목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가 이곳에 떨어지는 이적이 생기자 법흥왕 때 불교를 공인하게 되었으며, 이곳에 절을 세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영험들과 더불어 상당히 번창한 큰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임진왜란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창건 당시 이 절의 이름은 자추사(刺楸寺)였으나 어느새 백률사(栢栗寺)로 이름이 변했다. 신라에서는 음이나 뜻이 같으면 쉽게 이름이 바뀌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곧 자(刺)는 잣이니 백(栢)과 같고, 추(楸)는 밤이니 율(栗)과 같은 것이다.

대웅전은 약 3m 높이의 축대 위에 있으며 선조 때에 중창한 것이다.
대웅전 동쪽 암벽에 칠층탑이 음각되어 있으나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알아보기 힘들다 신라 시대의 작품이며 대웅전 앞에 탑을 건립할 자리가 없어 소금강산 암벽에 만들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경내에는 옛 건물에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초석과 석등의 지붕돌 등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금동약사여래입상과 이차돈 순교 공양비가 경주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다.


 
[금동약사여래입상]


 
[이차돈 순교공양비]


대웅전 뒤쪽으로 등산길이 소롯이 나있다. 이 등산길을 따라 약 5분 오르면 경비초소가 나타나고 여기에서 북쪽으로 약 50m 아래 지점에 유형문화재 제194호로 지정된 삼존마애불좌상이 있다.

조각수법은 우수하나 보존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석불이 새겨진 바위 위쪽에 손으로 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애불을 풍화로부터 보호하려는 어떤 장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률사 뒤 소금강산 정상은 경주시내가 가장 잘 보이는 곳 중의 하나이니 꼭 올라가 볼일이다.

굴불사터 사면석불
분황사 뒤쪽 북천을 가로지르는 구황교를 지나 2km 정도 북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백률사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이 보인다. 여기서 약 50m 떨어진 곳에 사면석불이 서 있는 널찍한 터가 나온다. 이곳이 굴불사터이다.

이곳 사면석불은 남산의 칠불암, 안강 금용사터의 사방불과 함께 신라의 사방불 신앙을 알려주고 있다. 원래 남북 사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것은 사방정토를 상징하는 것으로 대승불교의 발달과 더불어 성행한 사방불 신앙의 한 형태였다.

사방불의 사면에 어떤 부처를 모시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신라의 사방불은 대체로 서방에 아미타불과 동방에 약사여래 남쪽에 석가모니불, 북쪽에 미륵불을 모신다.

이곳 사면석불도 이와 같은 배치를 따르고 있다. 정면의 서쪽에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으며, 동쪽에는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를 모셨다. 동서 쪽에 모신 부처는 확실하지만 남북 쪽의 부처는 마멸이 심해 분간하기가 어렵다.
서쪽의 아미타불은 높이 3.9m로 다른 불상들보다 크며 돋을 새김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리는 별개의 돌로 둥글게 조각하여 얹었으며 오른손은 떨어져나갔다. 양쪽의 협시보살은 둘 다 독립된 돌에 조각하였는데, 오른쪽 대세지보살의 머리 부분은 허물어졌고 왼쪽 관세음보살은 한쪽 다리에 무게중심을 두고 균형을 잡은 삼굴(三屈) 자세를 하였다.
삼굴자세는 삼국시대 말기부터 나타나는데, 통일신라 시대에 와서 더욱 유행하였다. 이는 불상의 자연스러운 자세를 나타내고 균형 잡힌 신체 비례를 보여준다. 두 협시보살은 높이 1.95m이다. 동쪽의 약사여래상은 결가부좌하였으며 왼손에 약합을 들었고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한 듯하나 파손되었다. 남쪽에 현재 남아 있는 두 보살상과 불상은 몸체의 굴곡표현이나 옷주름 등을 볼 때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이들은 모두 높은 돋을 새김으로 조각되었다.

불상의 광배는1.6m 가량 되는 주형(舟形) 신광이다. 두광에는 연꽃무늬, 빗살무늬, 당초무늬가 차례로 새겨져 있으며 이 주위로 불꽃무늬가 둘러져 있다. 돋을 새김으로 조각된 북쪽의 보살입상은 높이 틀어 올린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다. 손을 든 자세나 천의를 두른 모습이 남쪽의 보살과 비슷하나 보존상태는 매우 안 좋다. 왼쪽에 선각으로 된 보살상은(7개의 손에 11면의 얼굴을 가진 관음보살이다.
이는 관음상의 변화된 형태로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다방면의 신통력을 보여주는 주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렇게 사면석불에 십이면육비의 관음보살상이 표현되어 있는 것은 8세기 통일신라 시대에 신앙된 불상 중에 밀교적 성격을 띠는 불상이 섞여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예이다. 보물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 정보★
굴불사지 석불상

보물 제121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이 사면불은 서쪽 면은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삼존불, 동쪽면은 유리광 세계의 약사여래, 남쪽 면은 양각의 보살입상과 음각의 입불상 2구, 북쪽 면도 역시 입불상 2구를 양각으로 새겨 화엄세계를 나타낸 것이다.

불상 조각에 있어 입체 양각 음각의 입상, 좌상 등을 변화 있게 배치하고 풍만하고 부드러우면서 생기를 잃지 않은 솜씨는 통일신라 초기의 특색이다.

「삼국유사」 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에 거동할 때 땅속에서 염불소리가 들려오므로 파 보게 하였더니 이 바위가 나왔다 한다. 바위에 사면불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하였다 전하니 그 유적이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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