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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

출처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감은사지

(비회원)님 | 2005.05.30 | 조회 3004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효심으로 지은 절 <감은사>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있는 감은사 터는 동해의 용이 되신 문 무왕이 드나들었던 절터로 한국석탑의 전형양식을 보여주는 동서 쌍탑으로 유명하다.

백제와 고구려로부터 차례로 항복받고 당나라와 8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문무대왕의 마지막 근심은 바다 건너 왜구였다.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는 대왕의 뜻은 왜구가 자주 출몰하는 동해 구에 절을 세워 부처님의 힘으로 왜구를 격퇴하고자 절을 짓다 완성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시니 그 아들 신문 왕이 절을 완공하고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 는 뜻으로 ‘감은사(感恩寺)’라고 이름을 붙였다.

1959년 발굴 조사 때 가장 관심이 된 것은 용이 되신 문 무왕이 감은사에 출입하여 사는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금당의 바닥 구조는 방형대석을 2중으로 놓아 위쪽 대석 위에 장대석을 걸쳐놓고 그 위에 큰 장대석을 직각으로 마치 마루를 깔듯이 놓고 그 위에 초석을 놓게 하였고 이 마루 장대석 밑은 빈 공간으로 된 특수한 구조로 그 예가 없는 것이다. 금당의 빈 공간은 용이 되신 문무대왕이 감은사 금당 아래에서 지친 몸을 편히 쉬시게 한 상징적인 공간일 것이다.

감은사의 구조는 쌍탑 1금당 양식으로 종래의 1탑 1금당 양식에서 발전한 것이다.

감은사지 동ㆍ서 3층 석탑(국보 제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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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 탑은 창건 연대를 알수있는 가장 오래된것이다.

석탑은 통일 전부터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현존하는 예는 없고 신문왕 2년(682)에 건립한 감은사 터에 있는 동서 쌍탑이 가장 오랜 것이다. 이 탑의 양식은 기단이 2중이고 각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표시되고, 몸돌(탑신) 각 층에는 우주가 표시되었고, 지붕돌(옥개석) 밑에는 직각으로 꺾이는 계단식 받침이 5층 있고, 추녀는 좌우 끝이 수평을 이루며 낙수면 은 완만히 경사지게 되었다.

이러한 형식은 목탑의 외형을 가능한 한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데서 오는 결과로서 삼국시대 백제의 석탑과는 다르며 이러한 양식이 이후 우리나라 석탑의 표본이 되어 한국 석탑의 전형양식이라고 한다.

통일 초기에 건립된 높이 약 13m의 감은사탑은 긴 찰주가 남아 있는데 이것은 상륜부가 있었던 잔재로서 그 중심이 되었던 찰주만이 남은 상태이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 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 십 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청동제사리함(보물 제366-1호)과 청동제 사각감(보물 제 366-2호)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3층 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